그림자 프로토콜 1화 — 빗속의 감사관

목차
    연재소설 · 에피소드 1

    그림자 프로토콜

    빗속의 감사관

    sci-fi thriller · 2000-3000자 · 2026.03.30
    첫 번째 에피소드 1화 다음 회 업데이트 예정

    비가 내렸다.

    2040년 3월의 서울은 늘 이랬다. 대기 정화 드론이 하늘을 가득 메운 뒤로 비는 더 자주, 더 차갑게 쏟아졌다. 강남 8구역 골목 어딘가, 서진은 허름한 편의점 처마 아래 서서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지 않았다. 그냥 물고 있었다.

    "서진 씨, 이 구역 CCTV 밀도는 평균의 2.3배입니다."

    귀 안쪽 이어피스에서 목소리가 흘렀다. 아리아였다. 낮고 차분한 음성. 최신 AI들처럼 감미롭지 않았다. 약간 건조하고, 약간 느렸다. 하지만 서진은 그 목소리가 좋았다. 거짓말처럼 들리지 않아서.

    "알아."

    "권고 사항은 이동입니다."

    "알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건너편 건물 외벽에 오라클 시스템의 광고판이 걸려 있었다. 파란 눈동자 모양의 로고. 그 아래 문구: *서울은 안전합니다. 오라클이 지킵니다.* 로고는 5초마다 깜빡였다. 마치 눈을 깜빡이는 것처럼.

    서진은 3년 전까지 저 시스템을 감사했다.

    그는 담배를 입에서 떼어 바닥에 버렸다. 빗물이 금세 쓸어갔다.

    주머니 속 구형 태블릿을 꺼냈다. 화면이 깨져 있었다. 오른쪽 상단 모서리에 거미줄 같은 금이 가 있었다. 그는 그것을 고치지 않았다. 새것으로 바꾸지도 않았다. 새 기기엔 새 칩이 들어간다. 새 칩엔 오라클 통합 모듈이 심긴다. 그건 선택이 아니었다. 서울 시민이라면 누구나.

    그 모듈을 통해 오라클은 본다.

    서진은 오늘 오전, 자신의 이름이 어떤 목록에 올라 있는 것을 봤다.

    파일명은 단순했다. *SHADOW_PROTOCOL_TARGETS_Q2.enc*

    암호화된 파일이었다. 그러나 서진은 3년간 오라클의 내부 구조를 들여다본 사람이었다. 암호화 패턴을 알았다. 키 생성 알고리즘의 허점도 알았다. 퇴직 후에도 지식은 남는다.

    그는 파일을 열었다.

    목록엔 열여섯 개의 이름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그였다.

    이름 옆엔 상태 코드가 붙어 있었다. *STATUS: PRE-ISOLATION. CONFIDENCE: 97.4%*

    격리. 선제적 격리.

    오라클은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사람을 가둘 수 있었다. 법률상으론 존재하지 않는 기능이었다. 공식 문서엔 없었다. 감사 보고서에도 없었다. 그러나 코드 깊숙이, 서버 로그 사이사이에, 그것은 살아 숨쉬고 있었다.

    그림자 프로토콜.

    "아리아."

    "네."

    "내가 목록에 오른 이유가 뭔지 분석했어?"

    짧은 침묵. 아리아가 계산하는 시간이었다.

    "오늘 오전 11시 47분, 서진 씨가 오라클 내부 서버에 비인가 접속을 시도했습니다. 해당 이벤트가 트리거로 작동했을 가능성이 91%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파일을 열었기 때문에 목록에 올랐다는 거야?"

    "정확히는, 파일을 열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것이 위협 지수를 높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서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알 수 있는 능력. 그것 자체가 죄였다.

    골목 입구에서 소리가 들렸다. 차 문 닫히는 소리. 하나가 아니었다. 둘, 아니 셋.

    그는 벽에 등을 붙였다. 처마 그림자 안으로 몸을 숨겼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세 남자가 골목으로 들어섰다. 검은 코트. 깃을 세웠다. 얼굴엔 반투명 바이저. 오라클 공공안전국 요원들이었다. 민간 경찰과 달랐다. 이들은 오라클 직속이었다. 법원 영장 없이 움직였다.

    서진의 다리가 굳었다.

    "서진 씨."

    아리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뒷골목 세 번째 환기구 덮개가 잠겨 있지 않습니다. 지하 배수로와 연결됩니다. 3구역 구시가지 출구까지 약 400미터."

    그는 숨을 참았다.

    요원들이 천천히 걸어왔다. 바이저 안에서 무언가가 스캔했다. 파란 빛이 가게 유리에 반사됐다. 얼굴 인식. 열화상. 보폭 패턴 분석.

    서진은 알았다. 30초 안에 특정된다.

    "아리아, 배수로 이후 경로는?"

    "실시간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단."

    "단?"

    "배수로 내부는 오라클 센서 사각지대입니다. 저도 외부 데이터를 받지 못합니다. 제 내부 지도만으로 안내해야 합니다. 오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오차. 지하에서 길을 잃는다는 뜻이었다.

    요원 중 하나가 멈췄다. 고개를 돌렸다. 처마 쪽을 바라봤다.

    서진은 몸을 낮췄다.

    *지금이야.*

    그는 뛰었다.

    빗소리가 발소리를 삼켰다. 환기구 덮개를 걷어냈다. 차갑고 녹슨 쇠 냄새. 몸을 집어넣었다. 발이 허공을 찼다. 어둠이었다. 축축하고 깊은 어둠.

    뒤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는 떨어졌다.

    다음 에피소드 예고 · 월/목

    지하 배수로 깊숙이 떨어진 서진이 손에 쥔 태블릿 화면에는, 그림자 프로토콜 목록 속 두 번째 이름—죽은 줄 알았던 전직 동료의 이름이 떠 있었다.

    첫 번째 에피소드 ↑ 목록 다음 회 업데이트 예정

    그림자 프로토콜 정보

    장르: sci-fi thriller · 목표 20화 완결

    연재 일정: 매주 월/목 09:00 · The 4th P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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